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꺼삐딴 리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인국 박사는 [[기회주의자]]의 전형이며 [[친일]]-[[친소]]-[[친미]] 노선을 연속으로 갈아타며 애국심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.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배신과 아부도 서슴지 않는데 이런 인간 말종이 [[악마의 재능|의술 하나만은 뛰어났기 때문에]] 결과적으로 자신의 처세술과 능력을 활용해 [[마지막에 성공한 악당|인생의 승리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.]] 이는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한국 사회를 반영한 것으로 실제 [[매국노]]의 대명사인 [[이완용]]도 이와 비슷한 전적을 가졌으며 중간 단계인 [[친소]]만 빼면 많은 [[친일반민족행위자]]들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다. 이 소설은 그런 [[친일파]] 같은 [[매국노]]들의 삶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. 사실 [[북한]]에서 아들을 모스크바 유학까지 보낼 정도였는데 6.25 전쟁 때 [[월남]]한 건 살아남기 위한 포장이었다는 게 정설. 혹은 딱히 어떠한 주의가 없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'''가장 잘나가는 쪽'''에 붙어먹는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. 전쟁이 났을 때 굳이 남하한 건 소설 초반에 공산주의 계열한테 찍힌 걸 봐서 전쟁 통에 벌어질 학살을 예견하고 몸을 피한 것으로 해석하면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. 이후 [[북한]]이 [[토사구팽]]식으로 [[박헌영]], [[김원봉]] 등이나 [[김일성]]의 동료들마저도 수상하다 싶으면 [[숙청]]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인국도 월남 안 했으면 진짜 죽었을지도. 생각해 보면 일제 강점기에도 적극적으로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의술을 바탕으로 일본에 [[귀화]]하거나(쉽지는 않았겠지만) 차후 소련행을 택하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피붙이를 보낼 망정 굳이 한국에 남아 있었다. 게다가 이인국 정도씩이나 되는 [[고학력자]]이자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 소련 체제의 폭압성이나 통제, 규제 사회가 답이 없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. 북한에 거주하면서 그나마 살 구멍인 소련행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유학 보냈을 뿐이란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럽다. 그나마 인간적인 부분이 있다면 딸인 나미를 꽤나 애지중지 대한다는 것. 나미가 미국으로 떠난 후에는 새 아내와 늦둥이가 옆을 지키고 있음에도 여전히 나미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허전해한다거나 나미가 미국인 교수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분노하면서도 차마 대놓고 반대는 못 하고 그냥 "충분히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"고 마지못해 허락하는 점[* 다만 이 장면은 이 미국인 교수가 백인, 즉 동양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인국의 [[인종 차별]]적 시각이 섞였다고 할 수 있다. 실제로 작중에서는 그 교수와 결혼하면 혼혈 흰둥이가 나오는 거냐며 혐오감을 느끼는 장면이 묘사된다.],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겸사겸사 딸을 만나러 미국행 절차를 밟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. 그리고 전처가 피난 중 수용소에서 병사한 것에는 하나뿐인 아들이 실종된 것도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북한 유학생이 [[서독]]으로 망명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혹시 아들이 아닌지 살펴보는 것을 보면 그냥 평범한 아버지다. 기사를 보면서 '얘는 대체 뭐 하는 거길래 이런 축에도 끼질 못하냐... 애비가 [[월남]]한 것이 알려졌으면 그쪽에도 무언의 압박이 갈 텐데...' 하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아들이 어떻게 될지 심히 걱정하고 있는 듯하다.[* 사실 직계 가족이 월남했다면 북한으로 돌아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. 전후 북한에서는 참전자라도 월남자 가족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으며 설령 포로로 잡혔다가 본인이 원해 북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국군 포로들과 똑같이 [[적대계층]]으로 분류해 변방으로 보내 버렸다. 아들에게 남은 길은 진짜 운이 좋다면 신문 기사처럼 서독 등 [[제1세계]] 국가로 탈출한 뒤 대한민국으로 오는 것이고 운 좋게 소련에 남거나 중앙아시아로 가는 것이 그나마 최선으로 여겨진다.] [[제국대학]] 의대를 졸업했고 졸업할 때 받은 제국대학 문장이 새겨진 시계를 매우 소중히 생각한다. 당시 일본 대학의 풍습을 보아 졸업식 때 시계를 받았다는 말은 그가 [[수석]] 혹은 그에 준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이었음을 암시한다.[* 작중에서는 십팔금(18K 금) 시계라고 하는데 이를 보면 수석 졸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. 일본에도 속칭 금시계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은시계다. 특히 도쿄제국대학의 졸업식에는 천황(혹은 대리인)이 직접 행차하여 하사했다.][* 마찬가지로 [[박정희]] 전 대통령도 만주국의 군관 학교를 졸업했을 때 황제 [[푸이]]로부터 시계를 하사받았다.] 청진기 하나만 들고 내려와서 부자가 될 정도인 걸 보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의사로서의 실력은 최고에 가까운 듯. 일본 [[게이오기주쿠대학]] 병원에서 수술하지 못한 환자도 말끔하게 치료한 경험이 있다고 작중에서 회술하는 부분이 있다. 원래 의료계라는 업종이 실력에 따라 대우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의 환자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는 것도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. 의술은 인술이라고는 하지만 기술이기도 하며 기술은 그에 상응하는 댓가로 평가받기 마련이므로. 실제로 오사카 등지에는 실력 있는 한인 의사들이 꽤 많은 편이기도 하다. 출신 학교가 [[경성제국대학]]인지, 일본 본토에 있는 학교였는지는 확실하게 묘사되지 않는다. [[윤승운]] 화백이 한국 단편 소설 만화로 그렸을 때 이인국이란 캐릭터가 굉장히 싫었는지 [[카멜레온]]으로 그려냈으며 마지막에 지나가는 스님이 끼어들어 '저 [[속물]]'이라고 욕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. 이 책을 읽은 의사들은 당시 한국인 외과 의사가 저렇게 수술 실력이 좋았을 리가 없다며 비현실적이라는 감상을 남기기도 한다. 진짜 이 정도로 실력 좋은 외과의가 있었다면 [[친일반민족행위자]]고 뭐고 반드시 잡아야 할 실력자다. 실제로 작중에서 이인국이 친일-친소-친미를 갈아타면서 줄타기를 할 수 있었던 건 타고난 눈치도 있었지만 압도적인 실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. 6·25 전쟁 때 미국 의사들은 조금만 총상을 입었어도 무조건 손발 절단 수술을 해 버리는 한국 의사들에게 질겁한 바 있다. 물론 [[백인제]] 박사나 [[장기려]] 박사[* 장 박사는 백 박사의 제자였다.]는 예외다. 취미가 사냥이라는 것도 생각해 볼 부분이다. 평양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때 시민들에게 무장 해제와 무기 반납을 명령하자 이인국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애지중지하는 영국제 [[엽총]]을 빼앗기게 생겼다는 것이며 브라운 씨와도 친분을 위해 사냥을 나갈 약속을 할 때도 '새로 장만한 영국제 엽총'이 언급된다.[* 재밌게도 루마니아의 독재자 [[니콜라에 차우세스쿠]]도 사냥광이었고 영국에게 선물받은 영국제 엽총을 애용했다고 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